만수대 김일성 김정은 동상

평양에 다녀왔다. 말로만 듣던 대동강물은 그 굴곡의 70여년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흐르고 있었다. 금강산도 보았다.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는 4월이었지만 아직도 산 정상엔 눈이 녹지 않고 있었다. 마치 뭔가 될듯하면서 진전이 어려운 남북미 관계처럼 보였다. 

이번 북한 방문은 시드니 한인 비즈니스 그룹 콜링맨(Callingman)의 기획으로  5명의 멤버들이  7박 8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우리는 중국 심양에서 평양으로 들어가는 고려 항공을 이용했다. 아담한 사이즈의 비행기안에서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탁월한 미모의 스튜어디스가 정체성 모호한 햄버거를 건넬 때까지 우리는 마치 화성행 우주선이라도 탄듯 불편했다. 한시간 가량의 비행 후 평양 순안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수속을 지나면서는 오히려 맘이 편안해졌다. 중국의 여느 지방 도시 공항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검사대에서 뇌기능의 일부를 담당하는 모발폰을 모두 수거해갔을 때는 유체이탈의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다. 다행히 곧바로 돌려받았다. 특별히 뒤져본것 같지는 않았다.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밖으로 나가니 마중나온 북측 안내원들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았다. 백동무, 이동무라고 본인들을 소개했다. 백동무는 50대초반, 이동무는 30대중반쯤 되어보였다. 이번에는 여권을 모두 거둬갔다. 여권이 아닌 생사여탈권이 그들에게 넘어간것 같았다. 
알고보니 두사람 다 김일성 종합대학 출신이란다. 우릴 보고 대뜸 “무섭지 않습네까?  우리 머리에 뿔달린 사람으로 알고있었디요?”라고 말했다. 
그걸로 됐다. 우린 백동무의 자폭성 유머 그 한마디로 무장해제 되었고, 이후 하루하루 낯설음보다는 신기함으로, 이질감보다는 보편성을 느끼려 노력하며 끝내 단군 할아버지의 후손들임을 확인했다.

평양 개선문

평양은 도시 전체가 김일성 부자의 치적을 기념하거나 주체 사상을 반영하는 구조물들로 치밀하게 만들어진 이념 미술 세트장이었다. 주체 사상탑,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조국해방전쟁승리 기념탑, 개선문, 만수대 동상, 평양 지하철역 벽화, 인민문화궁전 벽화, 그외 수없이 많은 벽에서 볼 수 있는 프로파간다 미술 등등…
모두 기/승/전/주체사상의 미술이긴 하지만 분명 그안에 특유의 미학적 가치도 찾아볼 수 있었다. 평양에는 이렇듯 많고 다양한 주체 미술 구조물 사이사이 아파트와 공장이 있고, 시장과 식당과 이발관이 있으며, 사람이 있고 가끔 애완동물도 보였다.

나는 백동무에게 북한 미술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안내 해주길 부탁했고, 그는 이미  짜여진 코스를 전격 수정해서 만수대 창작사로 데려가는 성의를 보여줬다. 그는 북조선에서 미술하면 무조건 ‘만수대 창작사’라 했다. 

만수대 창작사는 말그대로 만수대에 위치한 예술품 제작소이다. 1959년에 설립되어 1000여명의 작가와 3000여명의 보조 작가로 구성되어있다. 대부분 평양 미술 대학의 졸업생들이며, 사회주의적 사실 주의를 기반으로 주체 의식을 고양하는 예술품 제작에 그 목적을 둔다. 여기서 예술품이라 함은 이른바 조선화 뿐 아니라 위에 나열한 모든 기념비적 건물 및 동상, 혹은 해외 수출용 구조물들을 포함한다. 

평양을 방문한 호주동포 이규미씨

만수대 창작사는 작품이 제작되는 현장이자 시스템이다. 우리가 둘러본 전시실 외에 크고 작은 규모의 분야별 창작단이 있다. 조선화 창작단, 유화 창작단, 출판화 창작단, 돌조각 창작단, 도자기 창작단, 동상 제작단 등등 역시 모든 미술분야를 아우르며 세분화 되어있다. 
거기서 미술인들은 유니폼을 입고 출근해 작품을 제작하고 퇴근시간이 되면 퇴근한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자신의 작업장을 팩토리(Factory, 공장)라 불렀다고 했던가. 북한의 미술 작품들이야말로 만수대 창작사라는 ‘공장’에서 제작되고 있었다. 회화의 경우 공동으로 작업하는 집채화보다는 개인작품이 많지만, 나머지 경우는 주로 공동 제작이 많다. 비슷비슷하고 큰작품이 많은 북한 미술의 특징이 여기서 기인하는 듯했다. 

평양의 밤에도 낭만은 있었다. 대동강 선상 식당 갑판에서 바라보이는 평양의 아파트와 별빛 반짝이는 하늘은 서울의 그것과 하나도 다를게 없었다.  다만 서울은 애욕이 넘쳐나는 치열한 현실인데, 평양은 마치 가상 현실의 게임에 접속했다 나온 느낌이랄까...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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