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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정신 답사단 기행문] 21세기의 불타는 독립정신(2)

기사승인 2019.09.05  14: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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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차 (난징): 산 속에 숨겨진 천녕사와 닦이지 않는 위안부의 눈물

재호 광복장학회(이사장 황명하)는 2016년 3•1절에 올바른 인성과 리더십을 지닌 차세대들을 지원٠양성할 목적으로 광복회 호주지회의 산하재단으로 설립됐다. 올해는 제4기 광복장학생으로 호주 거주 한인 대학생 3명(UNSW 1학년 문건우, 시드니대 1학년 설아빈, 모나시대 3학년 허정인)을 선발했다. 학생들은 7월 17일~24일,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중국 상해, 항주, 남경, 장사, 광주, 중경 등 10개 도시의 독립운동사적지 현장답사 교육에 참가했다. 3학생의 답사 기행문을 연재한다. - 편집자 주(註) 

난징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호주 단원들(허정인, 문건우, 황명하 이사장, 설아빈)

답사 3일째가 되자 일행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우리는 섭씨 40도에 이르는 뜨거운 중국 대륙의 여름 태양 아래서 이틀을 보냈으며, 전 날 밤에는 오랜 시간 동안 고속철을 타고 자정이 넘어서야 호텔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힘든 기색을 할 수 없었다. 지금 우리가 지나온 길을 선조들은 매 순간 일본군에게 쫓기며 걸어서 이동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날 방문한 첫 장소는 도시 외곽에 있는 산이었는데, 10년 이상 관광객 안내를 해 온 버스 운전사나 GPS 조차도 정확한 위치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함께 답사를 했던 교수님들의 안내가 없었다면 그 어떤 표시나 안내가 없는 이 장소를 찾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침내 산 위 깊숙한 곳에 숨겨진 천녕사에 이르렀는데, 이 곳은 3 기에 걸쳐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가 있었던 자리로, 졸업한 학생들은 조선혁명당이 생기고 유지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마음 아프게도 그렇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던 곳이 이제는 수풀로 뒤덮여 버렸고, 건물들은 무너지거나 폐허가 되어 한때 그 자리에 무엇이 서 있었는지 짐작만 할 수 있는 황량한 토대와 기둥만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 무너져 가는 흔적 마저도 우리 교수님들이 직접 4시간 동안 산을 헤매면서 발견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폐허가 된 이 곳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교수님들의 이런 노고 없이 이 답사는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본 아름다운 산자락과 그 아래에 그림같이 펼쳐져 있는 호수는 우리 선조들을 안전하게 지켜주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더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난징 이제항위안소기념관.

목을 따끔따끔 하게 하는 강렬한 햇빛 아래 우리는 난징시에 도착했다. 이 곳에서 우리는 이번 답사에 포함된 많은 장소들 중에서도 아마 가장 마음 아팠을 곳에 도착했다.

이제항위안소기념관에서 우리는 일본군에게 위안부로 납치된 12살에서 60살에 이르는 이십만이 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중 한국여성만 5만명이 넘었는데, 기념관에 전시된 조잡한 주사기와 검사 도구들, 그리고 사진 등을 보면서 내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

전시관 끝에 있는 눈물 흘리는 위안부 할머니 동상 앞에 도착했을 때, 우리 일행은 닦일리 없는 할머니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문질러 드리면서 그동안 참았던 분노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본정부의 안일한 태도와 무책임한 언행들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사 호남농업대학 내 유자명 선생 흉상 앞에서 호주 단원(문건우, 설아빈, 허정인 학생)과 답사단장 이만열 교수.

무거운 발길로 위안부기념관을 떠나 남경대학살기념관 등을 관람하면서 우리는 답사를 계속하였다. 산과 언덕을 넘어 밤에는 고속철과 야간열차, 낮에는 몇 시간씩 버스를 타고 이동 하면서 창사, 광저우, 류저우, 구이린에서 우리의 이야기와 배움은 계속되었다. <중략>

7일차 (치장과 충칭): 잃어버린 역사와 발자취의 종점

답사 7일째, 우리는 마침내 치장을 거쳐 충칭에 도착했다. 임시정부의 여정과 함께 우리의 답사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기에 다들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모든 사적지 방문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치장에 위치했던 임시정부 청사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청사 대신에 번화한 도시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고층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 교수님들의 지칠 줄 모르는 노고 덕분에 임시정부가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발을 내딛을 수는 있었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잃어버린 역사를 목도하면서 다시 한번 마음이 아팠다.

류저우 유후공원(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활동지)에서 독립군가를 부르면서 행진하는 단원들.

20년 후면 새로운 건물이 다시 우리 앞에 있는 건물을 대신 할 수도 있고,  또 100년이 지나면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속에 묻히면서 사람들은 이 장소를 평생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가 이런 역사의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이 경험을 기억해서 후손들에게 전하는 것 또한 이번 답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가 잠든 도시 한복판에서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중국인들 속에서도 우리는 우렁차게 독립군가를 불렀고, 태극기를 높이 흔들었다. 마치 조상님들께, "우리는 기억하겠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처럼.

마침내 우리는 최종 목적지인 중경 임시정부청사에 도착했다. 이번 답사의 여정을 고스란히 담은 전시관을 둘러본 후 마지막 단체사진 촬영을 위해 모여 우리는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고 중경 시내 전체에 울려 퍼지도록 목청껏 독립군가를 불렀다.

대한민국의 제 2의 광복군이 되어야 하는 우리

이 답사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한국 역사를 배우기 위해서? 그건 집에서 편하게 교과서만으로도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 대체 나는 왜, 그것도 굳이 대학 시험기간 동안 일주일이 넘도록 불볕 더위 속에서 수십 킬로미터를 걸었을까?

역사책이 사실과 숫자를 가르쳐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번 답사가 전해준 감동과 정신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한민국의 독립은 과연 완결된 것일까?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일본으로부터 위안부를 위한 보상 등 우리 임시정부 선조들이 꿈꾸던 태극기 아래 하나된 광복과 평화는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것 같다. 최근 일본의 경제적 보복을 포함해서 한국은 아직도 일본의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고, 우리가 그에 대항할 제 2의 광복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독립정신 답사는 내가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따라 과거를 다시 체험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 독립운동가들과 그들의 뜻을 도운 많은 이들은 내 마음 한 자리에 굳건히 자리 잡았고, 나는 절대 이 감사함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비록 호주의 푸른 여권을 가지고 살고 있지만 나 또한 "제 2의 광복군"의 씨앗 중 하나가 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날 "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켜낸 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한 내 선조들을 기억하며 나는 이 기행문으로 나의 독립정신을 맹세한다.

이번 답사를 후원해 주신 재호 광복장학회와 황명하 이사장을 비롯한 이만열 교수, 조범래 교수, 그리고 이 답사를 매우 가치있고 통찰력 있는 시간이 되도록 이끌고 도와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어설픈 나를 잘 돌봐준 6조 단원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충칭 임시정부청사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환호하는 독립정신 답사단원들.jpg

문건우(호주 UNSW 컴퓨터 공학과 1학년) info@hanhodaily.com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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