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표정의 스콧 모리슨 총리(AAP)

산불이 크게 번지는 데는 4개의 주요 요인들이 있다고 한다. 고온(폭염 등), 낮은 습도(장기 가뭄 여파), 강풍, 산에 탈 것(fuel source/fossil fuels)이 많은 환경이 그것이다. 
지난해 9월초 퀸즐랜드 골드코스트 내륙 산림지역에서 시작된  2019-20년 호주 산불은 드물게 이 4가지 요인이 동시에 겹치면서 12-1월 NSW, 빅토리아, 남호주, ACT 지역에서 기승을 부렸다. 호주 전역에 걸쳐 1600만 헥타르를 태웠다. 불에 탄 면적이 남한의 1.6배에 달한다. 33명의 인명 피해를 냈고 재산 피해는 가옥 3500여채 전소 등 막대하다. 동물 10억마리가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호주 남부는 1-8월 기간이 가장 건조한 기간인데 지난 3년 연속 혹독한 가뭄이 계속됐다. 장기 가뭄과 고온에는 엘니뇨, 라니냐에 이어 인디언 오션 다이폴(Indian Ocean Dipole: IOD)까지 영향을 주었다. IOD는 인도양의 서쪽이 동부보다 교대로 따뜻하고 차가워지는 해면 온도의 불규칙한 진동 현상을 의미하는데 ‘인디언 니뇨’라고도 불린다. IOD로 인해 호주 북서부 습도가 하락해 5월부터 연말까지 강우량 줄었다.   
2019년은 호주의 가장 더웠던 해였던 2013년을 능가했다. 예년보다 평균 1.52도 높았으며 12월은 무려 3.2도 높아 완전 ‘뉴노멀(new normal)'이었다.  

연말연초를 지나며 세계가 호주 산불 상황을 외신으로 생생하게 목격했다. 산불로 검은 색으로 변한 호주 삼림과 잿더미가 된 가옥, 산불 스모그로 회색 도시로 변한 시드니 멜번 켄버라 등 호주 대도시의 스카이라인이 자주 세계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켄버라에서는 매연으로 박물관의 문을 닫아야 했고 멜번에서는 호주오픈 일부 경기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번 여름 혹독했던 산불 위기로 호주 민심에도 변화가 생겼다. 호주국립대(ANU)의 설문조사(3천여명 대상) 결과, 호주인 4명 중 3명이 산불로 직간접적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14%는 산불로 재산 피해, 대피 등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나머지는 비즈니스 매상 감소, 산불 연기 피해, 여행 취소 또는 변경 등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거의 절반이 환경을 국가적으로 두 번째(1위는 국내 경제)로 가장 중요한 이슈로 꼽았다. 특히 여성과 젊은층의 환경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대도시 밖 거주자들은 걱정이 상대적으로 덜했다. 37%가 신규 석탄광 개발을 지지한다고 밝혀 지난 6월 45.3% 보다 상당히 줄었다.  
 
스콧 모리슨 총리와 연립 여당의 지지율과 신뢰도가 크게 흔들렸다. 단지 27%만이 모리슨 정부를 신뢰한다고 밝혔다. 산불로 환경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연립 지지자들 중 신규 석탄광산 지지가 하락했고 총리 만족도도 추락했다. 
‘스코모(ScoMo)’는 당내 강경 보수파의 반발로 말콤 턴불 총리를 퇴출하는 과정에서 ‘어쩌다 총리’로 선출됐고 총선에서 운 좋게 승리의 주역이 됐다. 그는 총선 승리 후 ‘기적을 믿는다’라고 큰 소리쳤다. 그러나 총선 6개월 후 산불 재난을 겪으면서 그의 리더십은 크게 손상됐고 지지율도 추락했다. 스코모에 대한 평가는 총선 직후인 지난해 6월 10점 만점에서 5.25점이었지만 올해 1월 3.92점으로 폭락했다. 연립 정부의 우선 지지율도 작년 10월 40%에서 1월 35%로 추락했다.

환경(기후변화) 이슈에서 연립 여당은 한 목소리를 내지 못 한채 분열돼 있다. 자유당 온건파는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지만 보수 강경파와 연립의 한 축인 국민당 의원들은 석탄 산업 보호와 현재 수준의 미온적인 기후변화 정책을 지지한다.
 
‘기적’ 덕분에 ‘어쩌다 총리’가 된 스코모가 연립의 발목을 잡고 있는 기후변화 아젠다에 이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악재를 어떻게 극복하며 리더십을 회복할지 여부가 2020년 호주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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