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 오는데 유리창으로 닫혀진 창고처럼 쓰는 샤워실에 세워 둔 여러 개의 여행 가방이 문득 눈에 들어 온다. 그 중에는 내가 오랫동안 들고 다니는 작은 기내용 가방도 있고, 용량이 큰 가방, 또 아내가 들고 다니는 붉은 색 작은 가방도 있다. 다닥다닥 가지런히 붙어 있는 것들 중에는 특별히, 지난 크리스마스 파격 세일 때 좋은 것을 싸게 샀다며 좋아하던 거창하지 않으면서도 디자인이 새롭고 바퀴도 잘 구르는 실용성도 있는 중간 사이즈의 새 가방도 끼어 있다. 대부분은 이번 3월에 한국을 들러 해외 여행을 갈 때 들고 갈 예비 가방들 이었는데 몇 달동안 대기만 하고 있다. 마치 현장 출동을 해보지 못한 데뷔 못한 실력있는 연습생 처지 처럼 앞으로도 반 년은 적잖이 이런 창고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가 중국과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주까지 전 세계가 함께 진통을 겪고, 서로 해외 여행객의 입국 금지를 앞 다투 듯 발표하고 있다.  여행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세상에 큰 기쁨을 탈취 당한 것 같은 상실감이 잠시 마음을 슬프게 한다. 그 때 벌려 놓고 하려던 일들은 어떻게 정리하지 하는 생각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했었는데, 포기 하니 다른 방도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는 허탈함도 든다. 시간이 지나니 한편 부질없는 거품낀 생각인데, 혼자 감동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자아도취적인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는 자각도 생긴다.      

교회도 사찰도 성당도 친한 유대인 친구의 회당도 모두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는 시대가 되었다. 두명 이상 만나는 것을 금하고, 만나도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제발 집에서 나오지 말라는 것(Stay Home)이 전 세계의 공통 슬로건이 되었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을까? 사람이 주도 했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 날 수 있을까? 막강한 권력자와 독재자가 세상에 많이 등장 했어도 온 세상이 이렇게 한 묶음으로 함께 고통받는 전무후무한 세상을 우리 눈으로 직접 목도 하며 사는 시기는 없었다. 
이번 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발표하면서 “과거 역사에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있다”라고 한 말처럼 평소에는 생각지 못했던 현실이 생활에서 경험되고 있다. 

요즘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사람들은 모두 온라인이나 전화, 이메일, 페이스북 또는 카톡이나 화상 회의로 만나니 실제 얼굴을 보며 만나는 건 집에 있는 두 마리 개와 아내 뿐이고 음식을 먹거나 TV를 볼 때를 빼고는 대부분 혼자의 시간을 보낸다.  오랜만에 집에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니 문득 ‘하루가 참 기네’ 하는 느낌이 새롭다.  여럿이 만나서 하던 일들을 혼자 생각해야하니, 그것도 오랫동안 해보지 않은 나름 어색한 일이다. 유튜브에 세계사, 철학 강좌를 듣다 보니 생각 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시각이 일리있는 지성적 반성을 불러 일으킨다. 

밖에 나가 식사를 할 수 없으니 여느 식당의 감사함이, 따사로운 햇볕이 드는 카페의 향기로운 커피의 향내의 그리움이, 집에서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가족의 포장없는 편안함이 불현 듯 소중한 선물 이라는 자성이 든다.  차를 몰고 조금만 가면 바닷가의 시원한 정취와 일렁이는 파도의 힘과 산에 오르면 신선한 공기와 오를수록 신비한 신이 만든 자연의 거짓없는 건강함은, 나는 결코 만들어 낼 수 없는 그 존재 자체가 황송한 자비라는 생각이 든다. 

유럽의 열화같은 축구도, 미국의 프로 농구도, 수영장과 체육관도, 영화관과 도서관도, 미술관과 박물관도 내가 당연히 즐기던 세상의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추어 섰다. 많은 것에 기대어 나의 행복을 대체하던 것들이 영원히 나에게 공급되는 실체가 아니라면 나는 무엇으로 나의 행복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완전히 내 것으로 확인되지 않은 거품과 같은 것을 의지하고 기대며 안심하고자 했던 자기 합리화는 세상이 멈추어 서니 심각하게 포장된 인생의 내실없는 결핍 앞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만약 신이 이해되지 않는 이 모든 일들을 주관하는 바로 그 분이라면 거품많은 세상과 벌거벗은 보잘 것 없는 나의 실체를 보게 하려는 명백한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어쩌면, 신은 지금 쯤 진심없는 많은 숫자의 식상한 예배와 기도를 거부하고 계신 지 모른다. 각자의 인생 앞에서 진정어린 홀로서기를 진리 앞에서 시도해 볼 모처럼의 기회를 다시 한번 우리에게 주고 있는 지 모른다. 

시대와 인생을 간파한 지혜로운 철학자들은 ‘인생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함께 살아가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의 자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신과의 진실한 관계성을 만들어 갈 때 비로소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라고 가르쳤다.  
이 시간이 다 지나가기 전에 뒷 마당에 무성한 잡초를 뽑아야겠다. 미뤄 놓았던 책들을 읽고 쓰려고 했던 글들도 정리를 해야 겠다. 연락이 뜸했던 사람들에게 몇 글자 소식을 전해야 하겠다. 이제 나 혼자, 조용히 신에게 다가가는 홀로서기를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하겠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 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도다 “ (시편23:1-3)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