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마지막 주부터 부활절 연휴기간(2-5일)을 지나면서 약 10일동안 NSW 정계에서는 보기 드문 드라마가 연출됐다.

지난 주 매트 킨 NSW 에너지 및 환경장관은 NSW 기후변화 자문기구인 ‘넷제로 및 청정에너지자문위원회(net-zero and clean energy advisory board)’ 신설을 발표하며 초대 위원장으로 말콤 턴불 전 총리를 임명했다고 발표했다. 킨 장관은 턴불 전 총리가 연방 환경장관 출신이며 정계 입문 전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 호주법인 사장을 역임한 전력을 강조하며 최적임자라고 추켜세웠다.
 
킨 장관은 3월 29일 내각에서 턴불 전 총리 위원장의 내정을 공표했다. 그러나 임명 발표 후 한주도 안된 4월 6일(화) 그는 턴불위원장 임명 취소(해임)를 발표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위원장으로 임명된 다음날(3월 30일) 아침 턴불 전 총리는  ABC 라디오 내셔날(Radio National)과 인터뷰에서 NSW에서 신규 석탄광 개발 허가 중지(moratorium)를 촉구했다. 

부활절 연휴 직전인 바로 다음날(3월 31일) 어퍼 헌터(Upper Hunter) 지역구의 보궐선거(5월 22일)가 결정됐다. 이 지역은 NSW에서 광산업 일자리 의존도가 가장 높다. 마이클 존슨 국민당 의원이 성매수, 매춘여성 성폭행 의혹, 의회에서 외설적인 전화 메시지 전송 스캔들로 의원직을 전격 사임하고 정계를 은퇴하면서 보궐선거가 결정된 것,  

이 어퍼헌터 보궐선거에서 자유-국민 연립이 승리하지 못할 경우 글래디스 베레지클리란 주정부는 ‘소수내각’ 위기에 몰리게 된다. 연립이 하원에서 과반 이상으로 계속 집권하려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러나 역대 보궐선거에서 대부분 집권당이 항상 고전해왔다는 전례 때문에 종전까지는 국민당의 텃밭이었지만 이 보궐선거 당락 예측은 쉽지 않다. 

결국 킨 장관은 턴불 신임 위원장의 성급한 소신 발언으로 위원회의 목적이 손실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위원장 임명을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상은 어퍼 헌터 보궐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는 당략적인 이유가 가장 컸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같은 후퇴(결정 번복)는 당내 온건파인 킨 장관의 향후 입지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 성향이 강한 일부 매체들도 턴불의 위원장 임명을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특히 뉴스 코프 계열사인 데일리 텔리그라프지는 반대 켐페인에 앞장섰다.
야당(노동당)은 물론 원내이션당(One Nation)도 비난에 가세했다. 마크 레이섬 원내이션 NSW 위원장은 “어퍼 헌터 보궐선거는 헌터 지역에서 석탄 일자리를 놓고 싸우는 현장될 것이다. 턴불의 코멘트는 사실상 석탄산업을 폐업하고 헌터 지역 주민들은 포도를 재배하거나 말을 사육해야한다는 의미다. 지역경제가 여전히 석탄 산업 의존도가 매우 높은데 턴불의 위원장 임명과 그의 코멘트는 오만하고(arrogant) 놀랍도록 엘리트주의(shockingly elitist)에서 비롯된 실책”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부활절 연휴가 시작된 4월 2일 성금요일(Good Friday) 존 바릴라로 NSW 부주총리 겸 국민당 대표는 킨 장관에게 “턴불 위원장으로는 어퍼 헌터 보궐선거에서 국민당 후보의 당선이 불가능하다. 더 이상의 곤란한 상황이 지속될 수 없다(untenable)”고 최후 통첩을 했고 연휴 직후인 6일 킨 장관은 위원장 해임을 발표했다. 

해임된 후 턴불은 “강성 우파 미디어가 깡패(thuggery)같은 반대 공작을 했다. 도대체 누가 결정권자인가?(Who’s in charge?)”라고 반문했다.

이 사태 전개 과정을 통해 턴불 전 총리는 호주 정계에서 핫 쟁점 중 하나인 ‘기후변화’와 ‘참 질긴 악연’이 있음이 재확인됐다. 턴불은 야당(자유당) 대표 시절 당시 집권 노동당(케빈 러드 총리 시절)의 탄소세 신설에 강력 반대하지 않고 유화적인 입장을 취했다가 자유당 강경 보수파 실세였던 토니 애봇으로 당권 도전을 받았고 불과 1표 차이로 물러나야 했다. 이어 턴불은 당권 도전으로 애봇 총리를 퇴출시키는데 성공하며 총리직에 올랐다. 그러나 2018년 기후변화 정책의 일환으로 에너지 믹스(탄소 배출 및 재생 에너지 혼합 사용 의무화) 정책을 추진하려다 다시 당내 보수파의 역습을 받아 결국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기후변화라는 뜨거운 감자로 야당대표-총리-정부 자문위원장직을 물러난 턴불의 사례는 호주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하다. 
 
호주 자유-국민 연립의 보수파가 세계적인 대세인 기후정책과 넷제로에 여전히 거부감을 갖는 이유는 석탄, 철광석 등 주요 수출 광물자원과의 오랜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총기산업 관련 막강 로비그룹인 전미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가 주도하는 총기소지 금지 반대 켐페인을 공화당내 보수층이 전폭 지지한다. 이들에게는 이미 총기 휴대 문화가 생활화돼 안도감 주고 너무 익숙해져 있어 총기 소지 관습을 거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의 이런 현상과 호주의 자유-국민 연립과 보수층의 기후변화 거부감을 비교하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행태 변화는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그들의 먹거리와 일자리가 연관되면 관계 단절은 불가능해 보인다.  
미국 보수층이 “총기 없이 우린 못 견뎌!”라고 외치듯 호주 보수층은 “기후변화 노 땡큐!”라고 외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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