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중 무소속 그린위치의원 법안 상정 예정
빅토리아 2017년 호주 최초 법제정
지난 주 퀸즐랜드의회도 통과 

일명 ‘자발적 안락사(voluntary euthanasia)‘로 불리는 ’자발적으로 조력을 받는 죽음(voluntary assisted dying: VAD)‘ 법안이 지난 주 퀸즐랜드 의회에서 통과됐다. 퀸즐랜드는 호주 주의회 중 상원 없이 하원만 있는 유일한 주다. 호주에서 다섯 번째로 VAD 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호주 6개 주에서 NSW주만 유일하게 통과되지 못한 상태가 됐다. 

사실 NSW주는 지난 2017년 호주에서 가장 먼저 이 법안을 통과시켜 VAD를 합법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상원에서 단지 1표 차이로 부결되는 예상 밖 결과가 나오면서 통과되지 못한 전례가 있다. 

빅토리아 주의사당 앞에 모인 안락사법 지지자들

NSW 상원 부결 며칠 후 빅토리아주 의회에서 통과되면서 빅토리아주가 호주에서 가장 먼저 VAD를 합법화한 주가 됐다. 그리고 서호주, 남호주, 타즈마니아가 뒤를 이었고 지난 주 퀸즐랜드주가 5번째로 VAD법을 통과시켰다. 퀸즐랜드주는 2023년 1월1일부터 이 법을 시행할 계획이다.

[호주 6개 주의 안락사법 제정 상태]
* 빅토리아: 호주 최초 합법화
* 서호주: 합법화 
* 타즈마니아: 2022년 10월 23일부터 발효
* 남호주: 2022년 후반 또는 2023년 초기 발효 예정
* 퀸즐랜드: 2023년 1월 1일 발효
* NSW: 6개 주 중 유일하게 불법 

서호주 안락사 찬반 대립

자발적 안락사법의 지지자들은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말기 환자들이 평화롭게 생을 마감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에서 찬성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일종의 자살을 누군가에게 위임하는 법안은 수용할 수 없다”라고 반대한다. 대체로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 복음주의적 크리스천 그룹(가톨릭 포함) 등이 반대하는 경향이 높다. 

자발적 안락사법 지지 단체 중 하나인 NSW 존엄사(Dying with Dignity NSW)의 쉐인 히그슨(Shayne Higson) 부회장은 “퀸즐랜드 의회에서 압도적(찬성 61표, 반대 30표)으로 안락사법이 통과된 것에 크게 고무됐다. NSW에서도 이 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수정 없이 통과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말기 환자들은 평화로운 죽음을 선택할 권리 있다. 안락사법의 장점은 말기 환자들이 의사들, 가족들과 솔직하고 개방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심리적으로 절망적인 단계(desperate stage)를 피할 수 있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104세 호주 과학자 스위스 바젤에서
‘베토벤 교향곡’ 들으며 잠들다 
#데이비드 구달 박사 사례

지난 2018년 5월 호주 최고령 과학자(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당시 104세)가 “나는 불치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능력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건강이 더 나빠지면 더 불행해질 것"이라며 안락사를 허용한 스위스 바젤을 찾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호주가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위스행을 결정한 것. 그를 지원해온 단체 관계자는 ”구달 박사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듣고 싶은 음악으로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합창곡인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주사 밸브를 열어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구달 박사의 안락사 선택은 초고령화 시대에 품위 있게 죽을 권리에 대한 논란을 초래했고 호주 여러 주가 안락사법 제정을 서두른 계기가 됐다.

2018년 스위스 바젤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호주 최고령 과학자 데이브드 구달 박사가 호주 공항 출국 전 가족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2021년 8월말 시드니 동포 남성(60대 중반, 폐암 말기 환자)도 스위스 바젤을 방문해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다. 한국에서 바젤을 방문해 이 동포의 마지막을 직접 목격한 지인은 “존엄사에 함께한 것은 영광스런 자리였다. 삶의 의미를 확연히 깨닫게 해 주었다. 존엄하게 산 사람만이 택할 수 있는 길이었다”라고 한호일보 기자에게 소식을 전했다.  

만성적 폐렴증(chronic inflammatory lung disease: COPD) 환자인 시드니 여성 주디스 데일리(77, Judith Daley)는 지난해 폐암 진단을 받았다. 지난 20년동안 50회 이상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이너 시티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 거주하는 그는 존엄사 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32회 이상 방사선치료를 받은 후 의사의 권유를 거절했다. 그는 “방사선치료요법(chemotherapy)으로 5-10%의 효과를 예상하는데 입원해 고통을 받을 확률이 10-20%라는 점에서 방사선 치료를 거절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나에게 삶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날이 온다는 점을 알고 있다. 나도 지금은 죽고 싶지 않다. 멋진 인생을 살았다. 9월 수술 후 호전을 희망하지만 언제 갑자기 상태가 급속 악화될지 모른다. 이에 대해 내가 나의 앞날을 콘트롤 하기를 원한다.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싶다”
 

폐암 환자 주디스 데일리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호주에서 자발적 안락사의 지지율은 매우 높은 편이다. 존엄사협회가 의뢰한 2017년 로이 모건 설문조사(Roy Morgan poll)에서 호주인 87%가 “전혀 가망없이 고통을 받거나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받는 경우, 말기 중환자들이 죽음을 결정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자발적 안락사를 지지했다. 

안락사는 2019년 ABC 방송의 설문조사(Vote Compass survey)에서도 정치나 종교와 상관없이 높은 지지율을 나타냈다. 시드니 서부의 블랙스랜드(Blaxland)와 맥마혼 (McMahon), 파라마타 3개 지역구의 안락사 지지율이 가장 낮았다. 인근 시드니 서부 프로스펙트(Prospect)의 휴 맥도머트(Hugh McDermott) 주의원(노동당)은 “나의 지역구 유권자들이 주기적으로 VAD 반대 편지를 보내온다, 여전히 상당한 반대 여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시드니 시티 지역구의 알렉스 그린위치(Alex Greenwich) NSW 하원의원(무소속)은 10월 중 여야 의원들의 지원을 받아 주의회에 관련 법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NSW 주의회는 6월 이후 델타 변이 발병으로 회기 재개를 확정하지 않았다. 그린위치 의원은 이 기간 중 노인 요양원 거주자들을 위한 대화와 지원 확대를 포함한 추가 수정을 한 뒤 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알렉스 그린위치 NSW 주의원(무소속)

4년 전 법안을 공동 상정했던 트레버 칸(Trevor Khan)의원(국민당)은 “안락사법안이 초당적인 지지를 받지만 상원에서 찬반 숫자 추산은 어렵다. 따라서 지난번처럼 막상막하일 수 있다. 만약 이번에도 통과되지 못하면 다음 기회엔 필연적(inevitable)으로 통과될 것”으로 전망했다.  
  
NSW 상원에서 통과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2017년 반대했던 정치인들 중 상당수가 재임 중이다. 당시 반대표를 던진 맥더모트 의원(노동당)과 기독민주당(Christian Democratic Party : CPD) 창설자인 프레드 나일 목사(상원의원)는 “표결에서 다시 반대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맥더모트 의원은 “그 당시와 지금 실제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본다. 자살을 위임하는 것을 수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반대 의향을 밝혔다. 나일 상원의원은 “퀸즐랜드 의회에서 압도적 통과에 실망했다. 위험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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