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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문명의 배반자

기사승인 2021.10.14  12: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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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달타(悉達多, 싯다르타)는 인도 가비라국(迦毗羅國,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의 뜻은 ‘다방면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는, 장래 통치자의 내공을 준비하라는 의미다. 

그는 자라나면서 그의 아버지인 정반왕의 뜻을 거부하려는 언행을 보였다. 약육강식의 잔인한 생명 세계의 무자비와 권력의 횡포에 대한 깊은 회의 때문이었다. 불안해진 정반왕은 그의 마음을 되돌려 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궁을 잘 지어서 모진 더위도 느끼지 않게 하고, 저녁엔 기녀들을 모아 춤과 노래로 밤을 지새운다. 

어느 날 저녁, 태자 싯달타는 잠들어 있는 무녀들의 방안을 보게 된다. 진한 화장을 하고 갖은 교태를 부리면서 노래와 춤을 출 땐 그럴듯하게 보였으나, 옷을 걷어붙이고 허벅지를 내놓고 코를 골며 잠꼬대까지 하면서 정신없이 자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을 본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다. ‘내가 저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함께 손뼉을 치면서 놀았다니…’ 그런 태자의 마음을 눈치챈 부왕은 서둘러 결혼을 시킨다. 예쁜 여성을 만나 자녀를 두게되면 그로 인한 애착심이 출가의 뜻을 막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의 부인이 아들을 순산했다는 소식을 들은 싯달 태자, 그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면서 독백을 한다. “오! 라훌라!” 이 말은 ‘장애’라는 뜻으로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쓰여졌다. 일말의 애정이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싯달타는 아무리 생각해도 출가수행의 뜻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의 나이 29살 되던 새벽에 마부 차익을 불러서 눈 덮인 히말라야 설산으로 혈혈단신 수행 길에 접어든다. 흔히 말하는 부귀와 공명이 보장된 왕권을 버리고 그는 왜 홀로 그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을까? 생존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인도 사회에서 수많은 철인과 수행자들을 만나서 많은 토론을 해 보았으나 한 사람도 성에 차지 않았다. 전통적 이론의 답습과 관념적 희론으로는 그저 흉내만 낼 뿐, 자신이 희망하는 근원적인 문제 해결은 어렵겠다고 판단한 그는 혼자서 6년의 명상에 몰입한다. 어느 날 새벽 그는 그가 그토록 원했던 정각을 이룬다. 모든 존재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진리적 안목을 갖춘 것이다. 작은 나라의 왕이 되어 오욕락을 즐기려는 그 옹졸한 마음을 버리고, 출가하여 대도를 이룬 그는 불교의 창시자가 되면서 삼계의 법왕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그가 발견한 진리의 요체는 연기론이다. 모든 존재는 이것과 저것의 관계 속에서 창조와 발전, 변화가 지속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는 중심 세력은 마음이라는 한 생각의 오묘한 작용이다. 인본주의가 핵심이 되는 불교의 원리는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수많은 경전 중 대표격인 화엄경엔 이런 말씀이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불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을 알고 싶다면 이 세계의 모든 존재의 실상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임을 잘 관찰하면 된다.“ 

불교의 용어는 언제 들어도 아리송하여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것을 쉽게 풀이해서 부연한 글을 논서(論書)라고 한다. 그 글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기신론(起信論)이다. 믿음을 일으키게 하는 글이라는 뜻의 이 책도 난해하고 딱딱하긴 경전 못지않다. 그래서 붙은 별칭이 ‘깐깐 기신’이다. 인도의 마명이 지은 것의 한문 번역본을 다시 한글로 해석하다 보니 어렵긴 매한가지다. 이 이론을 가장 명료하게 해설한 분이 신라 때의 원효대사이다. 불교는 마음이라는 오묘한 생각의 심층 심리를 다루는 분야라 그냥 지나가는 생각으로는 도저히 그 기저에 깔려있는 깊고 복잡다단한 감정의 흐름을 분명하게 파악하기가 매우 힘들다. 원효는 해골바가지 물을 맛있게 먹게 된 것을 계기로 마음의 본성을 깊게 깨달았기 때문에 기신론에 대한 분명한 해설을 할 수가 있었다. 당시 그렇게 콧대가 높았던 중국의 고승들이 앞다투어 원효의 글을 보고서 감탄했다고 하는 기록이 지금도 남아있다. 

논서엔 일심을 주제로 내세우고 두 문을 열어둔다. 우리의 마음엔 진심과 망심의 두 가닥이 있다. 거기서 본질과 모습과 작용이 함께 나와 설친다. 그렇게 되어 오염된 마음의 확산과 본질로 회귀하려는 양심적 작용이 복잡하게 전개되고, 그것이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키며 때론 전쟁과 살상을 일으키게 되는 역사를 창조하게 된다. 그의 원동력은 무지이며 무지는 진리를 모르는 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무지는 가없는 자기 팽창을 추구하면서 그 목적지는 오욕락의 성취이다. 재물, 애욕, 식욕, 권력, 방탕이 그 중심 세력이다. 이 과정에서 개발로 인한 자연파괴, 권력을 연장해 보려는 권모술수와 독재, 온갖 부정과 부패가 잦아지면서 많은 문제를 양산한다. 이렇듯 일념을 앞세운 문명의 급속한 발달은 편리함을 제공하는 반면에 균등하게 적용되어야 할 창조성이 소멸되어 점점 더 물질과 문명에 기대게 되고, 진심의 응용력은 점점 감소해 간다. 

코로나 역시 그런 피폐한 인간의 탐욕에서 파생된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거래가 단절된 6월부터 지금까지 호미 하나로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면서 겨우 한 평 크기의 토굴을 만들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가능한 한 핸드폰과 별거를 해야할 것 같다. 손바닥 속에 세계 정보가 다 들어있고 손가락만 까딱하면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었다. 

반면에 코로나로 인해 비행기가 멈추고 집 밖을 못 나가게 되는 이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하면 좋을까? 옛말에 인간의 마음이란 사랑을 극대화하면 우주를 삼키고도 남을 수 있지만, 탐욕을 채우기 위해 시기하고 질투하는 생각은 바늘구멍에도 못 들어간다고 했다. 지나친 발달과 편리함의 추구는 인간의 본성을 훼손하고 공존의 상식을 허물어뜨릴 수가 있다. 

그래서 필자는 토굴에 들어가면 핸드폰을 하루 3번씩만 만질 작정이다. 전화기는 본채에 두고 토굴에서 지내다가 식사 때만 올라와서 전화나 문자 확인하고 응대할 생각이다. 그 전엔 그래도 한국 소식은 일부라도 알면 좋지 않겠나 하고 이곳저곳 유튜브를 들여다보았는데 이제 그 소식을 끊은 지가 두 달이 되어간다. 진실과 상식에 어긋나는 게 워낙 많은 줄 알면서도 이젠 좀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가끔 기웃거려 보았는데 이젠 아예 문을 닫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영어가 안되니 호주 TV는 처음부터 안 봤고. 안 보면 궁금하고 보고나면 짜증 나던 조국의 소식도 이젠 아예 끊어버릴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덕지덕지 흙을 발라 만든 한 평의 토굴에 두더지처럼 들어박혀 살려고 하니 나는 참으로 문명의 배반자가 된, 이 시대의 낙오자가 된 것이다. 문명의 배반자여! 그대는 이 시대에 무엇을 희구하면서 땅굴에서 먼산만 바라보고 있는가?

기후 스님(시드니 정법사 회주) kgy885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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