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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지평 ] 아테나 (2)

기사승인 2021.10.14  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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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뒤에서 토막 난 다리 한 개가 툭 튀어왔다. 맨살 다리였다. 오늘날 대다수의 충동범죄가 약물중독이 그 원인라고 생각하다 놀라서 움찔했다. 부리나케 차문을 열고 튀어나가다 그만 바닥에 떨어져 있던 담배를 밟고 말았다. 운동화발로 담배를 싹싹 문질러 비비는데 번개처럼 여긴 한국이 아니고, 나는 더 이상 생활지도교사가 아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사건현장을 응시했다. 자세히 보니 그것은 가로등 뒤에 서 있던 누군가가 스케이트보드 위에 올린 다리 하나를 앞으로 불쑥 내민 것이었다. ‘무릎보호대’와 ‘가로등그림자’가 교묘하게 칼끝처럼 서로 맞물려서 내 눈에 마치 토막 난 다리처럼 보였고, 뱀의 머리가 그려진 짙은 바탕의 스케이트보드가 밤이라서 내 눈이 그만 착시를 일으켰다.  
  목덜미를 긁으며 꼬리 내린 개처럼 차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무성한 가로수가 충분히 차를 가리고 있었지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CCTV를 확인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된 나는 크리넥스 한 움큼을 뽑았다. 카메라의 눈들만 남기고 휴대폰을 가렸다. 무음 닌자 캠 어플의 비밀번호를 푼 다음 옴짝달싹하지 않고 앉아서 액정을 지켜보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대각선 10미터 전방이 액정에 떴다.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상대는 소녀였다. 옆얼굴을 보다가 다시 한 번 화들짝 놀랐다. 아테나가? 설마하니! 그녀가 갑자기 허리를 접는 바람에 더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를 아테나라고 단정해 버렸다. 그러자 본능적인 호기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친구지간일 수도 있어. 아냐, 두 사람의 하는 짓거리를 봐! 친구지간이라고 하긴 너무 이상하잖아. 나는 혼잣말을 지껄였다. 액정이 그들의 행동을 거짓 없이 보여주었다. 귓불을 꼬집자 전직의 직감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친구지간이면 자연스럽게 장난을 치거나 총알보다 더 빠르게 조잘대기 마련이다. 하지만 둘의 행동은 눈을 닦고 보아도 기이했다. 나는 못을 박듯 손가락에 힘을 눌러 줌을 조절했다.  
  갈수록 둘의 행동거지가 내 마음을 불안하게 흔들었다. 더구나 그곳은 푸시어(마약 딜러)가 판을 치는 구역이었다. 심지어는 열 살 미만의 아이들도 마약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고 풍문으로 들었으며,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경찰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면 진저리가 쳐졌다. 마약 상습자가 우글거리는 위험한 구역에 숍을 낸 일을 후회하기도 했다. 윤선생을 원망할 때도 많았다.   
  왜, 녀석이 초조하게 손을 배배꼬다가, 어깨를 움찔거리고, 그러다 한 쪽 다리를 떨어대는지? 옆구리에 낀 스케이트보드를 메뚜기처럼 까딱거리다가, 발바닥을 땅에 비벼대며 허리를 비트는지?  
  녀석의 표정은 얼음처럼 꽁꽁 얼어 있었다. 상대의 말에 귀를 곧추세우고 서 있는 소년은 호기심과 두려움이란 두 가지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년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제발 옆구리에 끼고 있는 스케이트보드를 땅에 내리고 손살 같이 도망가! 나는 한 마디 교훈을 던지고  싶어서 숨통이 막힐 지경이 되었다.  
  마침내 소년이 옆구리에 끼고 있던 스케이트보드를 탁, 하고 바닥에 내렸다. 내 직감이 틀리지 않다면, 왼발을 보드에 올리고 오른발로 콘크리트 바닥을 밀고 달려갈 차례였다. 성능 좋은 카메라에 달린 눈들이 잡아주는 소년의 행동을 보자 희망이 솟구쳤다. 땀에 젖어 끈적거리는 액정을 휴지로 닦다 전화벨 소리에 죄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빠! 어디야, 늦게 생겼잖아.  
  -어, ……어, 나, 나……, 곧 도착한다. ……금방, 지금 집 앞이야.
  손가락을 떨며 거짓말로 둘러댔다. 껌뻑껌뻑하더니 가로등에 파란불이 들어왔다. 아테나가 맞았다. 파리한 불빛을 받은 아테나가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내 직감에 스스로 감동했다.  
  아테나는 수시로 숍에 나타나 옷과 스케이트보드와 신발 그리고 모자와 액세서리들을 사갔다. 완벽한 곡선미를 가진 야릿야릿한 다리, 또 도톰한 입술에는 항상 립글로스가 반짝거렸고, 거기다 씀씀이가 헤퍼서 부유한 집의 딸이라 생각했다. 비교적 아테나 브랜드만 구입하기에 그녀를 아테나로 기억해 버렸다. 그녀는 요즘 세상에 흔치않은 꼬깃꼬깃한 지폐로 지불하는 별난 단골고객이었다.     
  드문 일이긴 하지만 아테나는 아빠에게 줄 선물이라며 제우스 브랜드 스노우보드 용품을 사 가기도 했다. 언젠가는, 티브이에서 보았던 낯익은 의사가 숍에 들어왔다. 마약중독자 재활센터에 수감된 아들을 방문하러 가는 길인데, 후디를 찾고 있다고 했다. 기이한 우연처럼 마침 아테나가 손에 들고 있던 제우스 브랜드가 그가 찾는 사이즈였다. 의사의 표정이 하도 간절해서 내가 나서서 아테나를 설득했다. 아테나는 괜찮다며 미소를 지었다. 평소에도 그녀는 웃기도 잘 웃고 입심도 뛰어났다. 
  아테나는 사건 전날, 문을 닫기 직전에 나타나 뱀의 머리가 그려진 스케이트보드와 방패와 창이 그려진 티셔츠 그리고 올빼미 연속무늬 운동화를 사갔다. 그래서 기억이 생생했다. 왁스와 휠도 함께 사간 것까지 잊지 않았다. 
  홍학의 다리 같은 아테나의 맨살다리가 선명하게 보였다. 그녀가 걸음을 뗄 때마다 짧은 스커트가 들썩거렸다. 시간이 갈수록 ‘몰카’를 찍는 흥분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있는 내가 이상했다.
  그때 맞은편에서 차 한대가 전조등을 번득이며 달려오더니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납작 엎드렸다. “빌어먹을! 불빛에 다들 도망갔겠군.” 중얼거리는데 가래가 끓어올랐다. 물을 마시며 곰곰 생각을 해보니 잘 된 일이었다. 식도를 타고 내러간 미지근한 물이 얼마간 마음을 식혀주어서 나는 마음 편하게 출발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어찌되었든 한국소년이 위험한 상황에서 구조되었으니까. 
  휴대폰의 전원을 끄기 전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달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두 청소년이 아직도 그곳에 있는 것이 눈에 띈 건 고개를 아래로 내리면서였다. 둘의 모습이 마치 피카소의 추상화처럼……, 기형동물이 엉켜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어떤 연상 작용을 동반한 섬뜩한 현기증이 일면서 갑자기 소년의 발밑에서 세상이 비틀거리며 흔들렸다.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직접 피부로 느끼기 전까지는 어떠한 정화행동을 하지 않으며, 아무리 무시무시한 위험이 다가온다 한들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라는 ‘가든즈 역설’이 기억났다. 눈앞에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일을 보고만 앉아 있자니, 정수리에 강렬한 뇌우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담배를 한 개비 뽑았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의자를 밀고 뒷자리로 넘어가 고개를 숙이고 담배에 불을 붙였지만, 맛이 꼭 화재현장에서 연기를 들이마신 것만 같았다. 그때서야 내가 손을 심하게 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내 손가락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던 것을 알아내고 껄껄 웃고 싶었다.  
  아테나가 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마치 거인처럼 팔 그림자가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그 바람에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주먹 그림자가 소년의 손에 닿아 있었다. 약기운이 뇌로 올라오는지 뒷골이 당겨서 뒤통수를 툭툭 때려야 했다. 
  아테나가 움켜쥐고 있는 주먹에 흉기나 폭발물 같은 물질이 들어있다고 유추되어 나는 튀어나가려고 했다. 그 물체를 당장 낚아채야 한다는 전직의 책임감이 악몽처럼 무겁게 다가왔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다. 눈에서 축축한 것이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소년의 차림새는 아주 말쑥했다. 스케이트보드에서 계속 발이 미끄러지는 꼴이 영락없이 지금 스케이트보드 타는 법을 막 배우기 시작한 초보 티가 났다. 보드를 마치 보물처럼 겨드랑이 꽉 껴안고 있는 모양새도 부모를 졸라 갖게 된 첫 보드로 보였다. 고급 브랜드의 형광 로고가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하늘이 낳은 주황색 알 같은 달이 소년의 머리통에 후광을 드리워 똑똑해 보이게 했다. 태권도 정도는 배웠을 것 같았고, 잘 하면 누이동생 하나 정도는 있어 보였다. 남들이 하는 것을 다 따라하고 싶어 하는 호기심 많은 유형일 것이고, 나이는 많아야 열두세 살, 아나 또래로 보였다. 나는 녀석을 한국인으로 간주해 버린 상태였다. 
  남들에게 뒤질까봐 하늘의 달이라도 뽑아 줄 것 같고, 아들이 너무나 귀해서 투명한 수족관처럼 들여다보고 일일이 간섭을 해야만 마음이 놓일 부모 밑에서 자랄 것 같았다. 반면 본인은 일 거수 일 투족을 주시하는 부모로부터 자유를 갈망하다 툭 하면 부모와 거래를 할 것이며, 안 된다고 호통을 치던 부모는 돌아서서 고등어자반 뒤집듯 소년의 요구를 들어줄 것 같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이니까.  
  자식의 일이라면, 다 죽어가던 몸도 벌떡 일으킨다든가 우박만 떨어져도 하늘이 무너졌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든가 할 것 같았다. 이민 일세답게 뼈가 부러지기 직전까지 쪽잠을 자가며 일해서 소년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며 뒷바라지를 할 것이고,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인생에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할 것 같았다.   
  현관문 밖에다 옹기종기 신발을 벗어놓고, 앞마당 양지바른 터에는 깻잎을, 물기 많은 터엔 미나리를, 숱 많은 초록 머리카락 같은 부추는 화분에 각각 재배해서, 양파링 모양으로 오징어를 썰어 넣고 부침개를 부쳐 먹는 집에서 살 것 같았다.  
  서양인에 비해서 왜소한 소년의 기를 죽이지 않으려고 옷이며 신발, 학용품과 스포츠 용품은 무조건 최고급 브랜드로 사줄 것 같았다. ……컴퓨터는 애플, 신발은 나이키, 티셔츠와 바지는 폴라……. 점심은 아시안 티를 내지 않으려고 꼭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싸줄 것 같아보였다.  
  막상 소년은, 고여 있는 물웅덩이처럼 더디게 째깍거리는 시간 앞에서 온몸을 비비꼬아대며,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부모로부터 자유를 찾고 싶어 할 것 같았다. 날마다 학교 앞에서 차를 대놓고 기다리는 부모 때문에 친구들의 눈치를 살필 것이고, 어쩌다 길거리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내심을 감추려고 용감무쌍한 제스처를 해 보일 것 같았다. 
  -완전 망했어. 이제부터 아빠 안 믿어. 
  문자가 들어왔다. 1초가 급했다. 가긴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는 나도 미쳐버리기 직전이었다. 
  -어쩌자고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이러고 있어. 딸이 기다리고 있는데. 하지만, ……지금 가봐야 풋볼 경기는 이미 틀렸잖아. 
  혼잣말을 하는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한쪽에는 떠나야 한다는 마음이 또 한쪽에는 호기심 가득한 욕망이 서로 싸웠다.  
  소년이 스케이트보드를 튕겨 올려 겨드랑이에 꼭 껴안는 행동이 집에서 멀리 온 것이라 짐작되었다. 반면 아테나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누군가를 노리고 있다가 마침 소년을 만난 것이었다. 아테나가 꾸미고 나온 모양새는 충분히 상습범으로 보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확신에 차서 소년에게 다가갔을 것이다. 한편 소년은 처음 당하는 일이라 두려웠지만 상대가 소녀이기 때문에 겁쟁이 티를 내지 않으려고 도망치지 못하고 노련한 척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0미터 전방에서 벌어지는 그 수작의 절차와 결과가 명료하게 유추되었다. 
  악착같은 아테나의 행동은 제우스로부터 총애를 독차지 할 것 같았다. 제우스는 핏줄과 양육이란 두 밧줄로 딸을 당기고 늘리며,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조절할 것이고, 제우스의 야망이 눈에 보이는 는 듯 했다. 부모마다 자식에게 거는 기대와 욕망은 각각 다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모두가 그들의 머리에서 튀어나온 것일 테니까. 
  만약 내가 소년이라면 단호하게 스케이트보드를 땅바닥에 탁, 떨어뜨려 재빨리 왼발을 보드 위에 올리고 오른발로 노를 젓듯 땅바닥을 힘차게 밀치고 가버릴 것 같았다. 40mm 휠이 콘크리트 바닥을 긁으며 굴러가는 소리도 잠시, 아테나가 따라잡지는 못할 테니까. 손을 올려 마른세수를 하자 얼굴이 아니라 거친 바위를 만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테나가 미소를 띠고 소년에게 바짝 붙어서 따발총처럼 쏘아댔다. 멋쩍어 하던 소년도 호기심을 물리치지 못하고 주먹안의 그것을 받으려고 손바닥을 펼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나도 더 이상 우두망찰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계속)

테리사 리 소설가 
15회 재외동포 문학상 대상수상
11회 민초문학상 대상수상
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

한호일보 info@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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