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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탈무드와 자녀교육(37회)] 현실이 되는 소망

기사승인 2021.11.25  15: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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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안 상인에게 팔려가는 요셉

성경엔 가정 내 다툼과 알력과 시기와 거짓과 살인이 등장하고,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는 부모의 모습이 종종  발견된다. 요셉의 이야기는 형제들 간의 알력과 시기와 가족 간의 얽힌 갈등이 적나라하게 표현된 가정불화의 이야기이다. 형들은 눈에 가시 같은 동생 요셉을 죽이려 작당했고, 이집트에 노예로 팔아 넘긴다. 들에 나간 것으로 알고 있는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요셉이 죽은 것으로 가장하여 겉옷을 짐승의 피에 묻혀 아버지에게 보여 준다. 

요셉을 잃은 야곱의 슬픔

1. 슬픔의 한계
토라는 야곱이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의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의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창세기37:34-35)”고 기록하고 있다. 
충분히 울법한 슬픈 일에 대해, 이상하게도, 탈무드는 우는 것에 엄격한 한계를 두고 있다. 유대인들에게는 사별과 같은 극한 슬픔에도 끝없는 애곡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은 사람이 정도이상 우는 것을 훈계한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인간의 슬픔이 결코 신의 슬픔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조언한다. 토라는 야곱이 자식들의 위로를 거부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랍비들은 그 이유를 중세 현자의 교훈에서 찾고 있다. 

야곱과 요셉의 재회

미드라시에 “사람이 죽었을 때는 위로를 받지만, 사람이 살아 있을 경우는 위로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야곱이 위로 받는 것을 거절한 것은 “아들 요셉이 아직 살아 있다는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현자들은 덧붙인다. 그것은 야곱의 마음에 요셉이 죽은 것을 믿고 싶지 않았으며 또한 그것은 살아있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되었고 위로를 거부하는 행동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다윗이 밧세바와의 부적절한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가 죽을 때, 신하들이 간절히 말렸지만 일주일이나 되도록 음식을 끊고 간절히 기도 하다가, 아이가 죽은 것이 확인되자 기도와 금식을 멈춘 것에서도 소망에 대한 그 유사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소망은 사람들의 위로를 거부하게 한다. 소망은 기도하게 한다.   

바빌론의 침공과 예루살렘 멸망

2. 합법적인 증거
토라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짐승의 보호를 위해 맡겼을 때, 만약 실제, 다른 동물에게 물려 찢겨 졌을 때는 짐승의 찢긴 가죽을 증거로 가져오면 죽은 짐승의 값은 갚지 않아도 된다(출애굽기 22:10-13)고 규정한다.   

이는 그런 경우가 아니면 상해를 입거나 죽은 짐승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인이 아벨의 피를 찾는 하나님의 질문에,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이니이까? 라고 말 대꾸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의 보상의 원리에 기반한 것이라고 랍비들은 지적한다. 보호에 대한 책임은 보상으로 나타나는데, 성경의 보상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유로 인한 증거를 가져오면 면책이 될 수 있는 구제 방안을 명시하고 있다.  

예루살렘 탈환과 축제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은 끔찍이 사랑하는 요셉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아버지 야곱의 마음으로부터 합법적인 면책을 받기위해서, 짐승의 피 묻고 찢겨진 가죽을 증거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야곱이 형에서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 염소 가죽으로 에서의 팔에 많은 털을 가장하여 그의 늙은 아버지 이삭을 속였던 것을 상기시킨다. 그는 이미 가죽 증거에 대한 전력이 있는 사람이다( 창세기27:16-23). 그는 자식들이 제시한 짐승 가죽 증거를 보며, 아직 설 되지 않은 의아함을 가졌을 법하다. 
탈무드의 현자들은, 야곱이 눈 앞에 있는 증거가 있었지만 그것을 믿지 않았으며 슬픔이 있었지만 소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로 받기를 거부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고 그 소망은 20여년 후에 그의 아들들이 기근에 쫓겨 애굽에 내려가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면서 극적인 상봉이 이루어지고 현실이 된다. 

예루살렘 탈환

3. 소망의 노래
에레미야는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슬픔이 담겼지만, 다시 돌아 올 것이라는 소망을 선포했다.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에레미야31:15-17).”

에레미야가 돌아올 것을 외칠 수 있었던 것은 소망이 위로받는 것 보다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편137편은 바빌론 강가에서 부른, 예루살렘을 향한 애절한 소망을 노래를 담고 있다. 나폴레옹 황제가 어느 한 회당을 지나갈 때, 유대인들이 금식하며 ‘Tisha B’av를 기념하는 애곡 소리를 들었을 때 왜 우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 때 ‘예루살렘을 위해서’라고 대답하자 ‘얼마나 오랜동안’ 애곡했는 지를 채차 묻자 1700여년이라고 말했다. 나폴레옹은 그렇다면 언젠가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예루살렘 통곡의 벽

야곱에겐 사랑하는 아들이 죽었다는 눈에 보이는 절망적 증거가 있었다. 하지만 그 증거를 보면서도 아들이 살았기를 바라는 소망은 자식들의 위로를 거부할 수 있었다. 우리에겐 슬픔을 가져올 것 같은 많은 현실의 근거들이 즐비하다. 탈무드는 “지옥 문 앞에서도 소망이 있다”고 강조한다. 탈무드는 우리에게, 때로 죽음과 같은 절망이 몰려 오지만, 사소한 것으로 위로 받고 순간을 잊으려 하기보다, 좋은 결과가 있고, 잘 마무리 되리라는 최선을 향한 소망을 마음에 새기라고 조언 한다. 바빌론 강가의 노래는 시온을 향한 소망의 노래이다. 이 소망의 노래는 나중에 현실이 되었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한호일보 info@hanhodaily.com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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