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호주 투어 콘서트 계기 ‘가사 번역’ 시작
BTS 가사의 스토리라인 통해 한국 문화 적극 소개 
현직 고교 교사로 학생들 이해, 소통 큰 도움

지난달 28일, LA에서 대면으로 시작된 BTS의 콘서트로 세계는  보라빛으로 물들며 들썩였다. 호주 아미(BTS팬클럽을 지칭)의 김지예씨는 BTS의 한류 열풍 중심에서 BTS 팬 번역가(fan translator)로 활동하고 있다. 본업이 5년차 고교교사인 그는 호주에서 태어난 동포 2세이고 그녀의 부모는 1988년 시드니로 이민을 왔다. 

▲ ‘팬 번역가(fan translator)’라는 호칭이 조금 생소한데..  
“나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말이긴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아마 BTS이전에도 해외에서 사용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지금은 트위터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콘텐츠들이 빠르게 퍼지기도 하고, 그 타이틀이 시대와 딱 맞아 떨어진게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에는 외국 팝 가수의 가사와 인터뷰를 해석해줄 사람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해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 BTS 입덕 계기는 무엇인지? 
“처음에는 멤버가 몇명인지도 몰랐고, BTS의 대표 곡들은 한 번 씩 들어보긴 했었다. 그러던 중 2017년 시드니 쿠도스 뱅크 아레나에서 열린 투어 콘서트에 참석했었는데, 이유는 딱 한가지였다. ‘한국가수가  호주에 와서 공연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야 앞으로 더 많은 한국가수들이 올 수 있겠구나’라는 책임감으로 갔다. 콘서트 전날 페이스북에 반값으로 파는 표 1장을 구해서 혼자 갔었다. 콘서트가 끝나갈 무렵 BTS의 음악에는 스토리라인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You Never Walk Alone’이라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했던 콘서트였고, 마지막에 리더 RM이 “우리는 그냥 서울에서 온 한국 남자 7명이고 세계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고 음악을 통해서 우리는 같은 것을 공유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나에게 그 말이 너무 와 닿았고, 콘서트 현장에 있었던 팬들의 반응이 너무 뜨거웠다. 예전에는 한국을 설명하려고 해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었는데, 콘서트장에는  BTS의 한국 가사를 다 외우고 따라 부르는 외국인들 사이에 내가 있었다. 그 공연장을 나오면서  BTS 노래가사와 멤버들의 말에 어떤 힘이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BTS를 더 알고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팬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김씨는 교교생 시절 호주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 너무 몰라 한국을 알려야겠다하는 생각에서 친구들을 한 명씩 붙잡고 한국 드라마, 노래를  가르쳐준 전력이 있다.

▲ BTS 콘텐츠 번역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콘서트를 다녀온 뒤 한국 사람으로써 책임감을 느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과 시기가 딱 맞아 떨어졌고, 시간이 조금 남아도는 20대 초반이기도 했다. 당시는  BTS 콘텐츠를 번역하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고,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들이 번역하는 콘텐츠에 틀린 번역이 있어도 팬들은 알 수 없었다. 또 주로 짧은 문장들만 번역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중 나만 읽기 아쉬운 긴 내용의 인터뷰 콘텐츠들을 시작으로 번역을 하게 됐다.” 

▲ 현재 어떻게 번역 활동을 하고 있나? 
“현재는 트위터가 메인 채널이다. 하지만 트위터에 긴 글을 번역하고 올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아서 블로그를 개설해서 그곳에 번역 콘텐츠를 올리고, 링크를 트위터에 올리는 방식이다. 가사 번역, 인터뷰 번역 그리고 한국에서 제작하는 자체 콘텐츠 등을 번역하고 있다. V LIVE 같은 채널을 통해 라이브스트림(livestream)으로 팬을 만날때는 동시 번역(live translation)도 한다. 작업을 할 때 주로 언어의 특수성을 고려해 용어 선택, 구문(syntax), 문장의 호흡이나 높낮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흐름이나 강조가 필요한 부분을 살리기 위해 운(rhyme)이나 숙어, 구문, 또는 불분명한 대명사 등을 적절히 변형시켜 번역하려고 하는 편이다. 번역하는 사람마다 번역하는 스타일이 달라서 받아들이는 팬들에게는 공부가 되기도 한다.”

▲ 팬들이 가장 선호하는 콘텐츠는?
“번역 계정을 운영하면서 팬들이 ‘가사’번역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BTS의 노래 가사에는 본인들이 생각해온 철학과 스토리라인이 담겨있다. 방시혁 PD가 철학을 공부했고, 이를 베이스로 각각의 멤버들이 10, 20대 청년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을까,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기뻐할까? 이런 아이디어를 잘 풀어나가며 직접 가사를 쓴다. 그래서 전세계의 아미들은 그 가사에 위로와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특히 화양연화와 같은 앨범 프로듀싱을 살펴보면 ‘스토리 라인’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BTS만의 깊은 철학이 담긴 노래 가사들을 팬덤이 선호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 어려움은 없었나?
“번역을 하는 일 자체는 너무 재미있고, 나름 창작의 고통이 있다.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충분히 이해해야하고, 가장 적합한 번역을 해야한다. 물질적인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정말 즐겁고,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다고 마음을 전해 올 때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게 된다. 그런데 가끔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번역을 할 때 설명을 덧붙이게 되면 그것에 대한 불만을 가지시는 분들도 생겨나게 된다. 왜냐하면 콘텐츠를 이해하고 번역하는 유일한 창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더 신중하고 지혜롭게 이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 본업이 학교 교사인데 어떤 점이 도움이 되는지.. 

“학교에서는 기독교 철학을 가르치고 교목(종교교사)도 겸한다. 사실 학교에는 이미 BTS팬인 학생들이 내가 번역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호감을 가지고 먼저 다가오기도 한다.  젊은 교사가 미디어에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 학생들과 더 깊이 교류를 할 수 있는 창구가 된다. 요즘 학생들의 장래희망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틱톡커’이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우리를 이해하는 교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집에서도 처음에 내가 왜 BTS를 좋아하는지 부모가 이해하지 못하셨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하실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이런 활동을 통해서 한국말도 늘었고, 부모님과의 이야깃거리가 생기게 됐다. 집에 방문하는 분들에게 자랑도 하시고, 멤버들 소개도 하신다. BTS를 통해서 한국이 알려지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알게 되니 뿌듯한 점도 있다. 흔히 말하는 ‘덕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부모님 세대가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 번역 하면서 ‘한국’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에서 특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나? 
“확실하게 있다.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위해 다시 알아보게 되고, 한번 더 읽어보고 생각하게 된다. 언어 자체도 그렇지만 ‘문화’, ‘한국사람들의 마인드’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는 부분들도 상당하다. 특히 형제 관계와 같은 위 아래 사람의 관계를 이해하게 됐다. 우리 세대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성일수도 있다. 하지만 BTS를 통해 한국의 유교적인 수직관계에서도 서로 협력하며 작업을 하는 것,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관계를 해나가는지에 대해서 아름답게 이해할 수 있었고,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 향후 계획은? 
“내년에 이루고 싶은 소박한 꿈은 ‘팟 캐스트’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BTS에 대한 번역 콘텐츠에 대한 심도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팬들의 질문을 대신 풀어나갈 수 있는 일 등을 꿈꾸고 있다. 사실 이미 스크립트를 쓰고 있는 중이다. 원래 말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음악과 접목해서 프로젝트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 문화를 알리고 싶은 꿈이 어릴 적부터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졌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려고 한다. 더 한국을 알고 싶고, 한국을 알리고 싶다.”  

[김지예가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
BTS을 가장 잘 설명하는 곡들이 있다. Map of the Soul : 7 앨범 (2020)에 인트로 섹션마다 래퍼가 테마를 소개하는 곡이 있다. 그 곡이  BTS의 목표, 두려움을 모두 담고 있어서 제안한다. 
'융의 영혼의 지도’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앨범이다.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나, 내 안에 있는 나, 그리고 내가 되고 싶은 나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20대 초중반의 모든 사람들이 하는 고민을 잘 풀어낸 앨범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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