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찬 피해자들,  기후변화 고통 국민들 알아야”

전례 없는 수준으로 악화된 NSW 산불

산불(bushfire, 미국에서는 wildfire)은 호주와 인연이 깊다. 백인 정착 훨씬 이전 원주민들은 수백년동안 산불을 이용해 동물(캥거루) 사냥과 열매 채취, 화전 농사 등을 해왔으며 원주민들이 불을 다룬 기술이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근래 호주에서 산불로 인한 참사가 여러 번 반복됐다. 최악은 2009년 2월 ‘검은 토요일(Black Saturdays)’로 불리는 빅토리아주 산불 참사로 무려 173명이 숨졌고 2천여채의 가옥이 소실됐다. 

2003년 1월 캔버라 산불로 4명이 사망했고 가옥 5백채가 소실됐다. ACT 준주 지역의 약 2/3를 태웠는데 ACT 남서부 야생동물의 95%가 죽었을 것으로 추산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참사가 있었다. 1983년 2월 16일 남호주에서 발생한 ‘재의 수요일 산불(Ash Wednesday bushfires)’로 빅토리아에서 47명, 남호주에서 28명이 사망했다. 

2019년 11월 13일(수) 현재 NSW에서 60여개의 산불이 번지고 있다. 15개 산불이 ‘지켜보며 대응하는 단계(watch and act levels)’이며 46개 산불은 ’권고 단계(advice level)‘다. 그러나 40개 이상이 아직 통제되지 않은 상태(uncontained)다. 

37도 고온을 기록한 12일(화) NSW는 대참사 등급의 위험은 모면했지만 여전히 ‘비상사태’가 발효 중이다. 12, 13일 수백개 학교가 휴교령을 내렸다. 

주택가를 위협하는 산불. NSW에서 이미 3백여채 가옥이 소실됐다

12일 NSW에서 50여채의 가옥이 소실돼 지난주까지의 피해를 합치면 3백채 이상이 전소되거나 큰 피해를 당했다. 이번 산불로 4명이 숨졌다. 소방관 13명을 포함 2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퀸즐랜드 동남부에서도 20여개의 산불이 타고 있다. 이미 14채 가옥이 소실됐다. 서호주도 40도 고온 날씨에 제랄튼(Geraldton) 지역이 산불로 위협을 받고 있다.

NSW에서 산불 시즌보다 이른 10-11월 전례없는 수준으로 산불이 악화되면서 호주 정부의 미온적인 기후변화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스콧 모리슨 총리와 글래디스 베레지클리안 NSW 주총리는 연관성에 대해 논의를 회피하고 있다. 반면 자유당과 연립 여당을 구성한 국민당 리더들은 신경질적인 반응과 함께 과격 발언을 쏟아냈다.   

스콧 모리슨 총리가 10일 대피소가 된 클럽 타리(Club Taree)를 방문해 산불 피해자인 오웬 휠란 할아버지(85세)를 위로하고 있다

9일 NSW에서 4명이 숨졌고 산불 소방대원 15명을 포함한 3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또 가옥 150여채가 전소됐다. 이날 스콧 모리슨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산불의 심각 상황에 크게 우려하면서도 기후변화 정책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그는 “피해자들과 가족, 소방대원을 위해 기도한다. 연방 정부가 지원책을 늘릴 것”이란 말로 대신했다.  

가장 피해가 컸던 글렌 이네스 세번 카운슬(Glen Innes Severn Council)의 캐롤 스파크스(Carol Sparks) 시장이 기후변화 대응에 미흡했던 점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산불로 집이 전소된 그는 “기후변화와 글로벌 온난화의 영향으로 피해가 극심해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무와 숲 모두 말라 죽고 있다. 저수지, 강/개천 어디에도 물이 없다. 정부는 그동안 뭐했나?”라고 질타했다. 

이처럼 산불 피해자, 소방대, 지자체 관계자들, 과학자들이 “심각한 재난 중심에 기후변화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나섰다.
  
글렌 이네스의 동부인 캉가왈라(Kangawalla) 산불로 주민 2명이 숨졌는데 사망자 중 한 명인 비비안 채플린(Vivian Chaplain, 69)은 집과 가축을 구하려고 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지만 심각한 화상으로 결국 숨졌다. 
세 번째 피해자는 타리 북부의 집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호주의 어떤 지역도 결코 산불을 피해갈 수 없다. 예방으로 최소화를 하면서 악화를 막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퀸즐랜드 선샤인 코스트(Sunshine Coast), 서호주 퍼스 시티에서 북쪽으로 20km 떨어진 워너루(Wanneroo) 지역도 산불이 번지고 있다. 반면 빅토리아의 알파인 지역인 마운트 호담(Mount Hotham)은 9일 -1도, 10일 -3도를 기록했다. 8일 멜번은 우박이 내렸고 타즈마니아 일부 지역은 눈발을 보였다. 기후 이상인 엘니뇨와 라니뇨가 반복되면서 이처럼 기상 이변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스파크스 시장은 “호주 정치 지도자들이 과학자들과 기후전문가들의 계속된 경고와 심각성을 무시해 왔다”고 지적했다.  

“NSW 산불 심화.. 기후변화 큰 역할”
“연관성 없는척 시늉 계속할 수 없어”

산불로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NSW 토링톤 지역

ANU 기후변화연구소(Climate Change Institute)의 임란 아마드 박사(Dr Imran Ahmad)는 “NSW의 이번 산불은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이 빈번해졌고 심각해졌다(increasing the frequency and severity)는 뚜렷한 증거다. 산불로 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막대하지만 모리슨 정부는 기후정책을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산불이 거세지면서 노약자들의 위험이 커진다. 
호주는 기후변화에 잘 대처할 준비가 돼있다. 기후변화의 지역사회 영향을 검토할 때 정치적 의지와 행동이 뒤따르면 재생에너지 강대국(renewable energy superpower)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기후변화 투자 요건이 너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ABC 기자 출신인 캐롤 던컨(Carol Duncan) 뉴캐슬 시의원은 약 3주 전 뉴캐슬에 사는 아버지로부터 충격적인 텍스트 메시지(NSW 북부 산불로 부친의 집이 전소된 소식)를 받았다. 그는 “모리슨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책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과학자들의 경고는 물론 지역사회의 진정한 기후변화 행동 촉구를 계속 무시해 왔다. 산불을 포함한 재난이 더욱 자주 발생하고 위협이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척 할 수 없다(can’t continue to pretend it’s unrelated)”고 말했다.  

전문가들 “이런 산불 악화 유례없어” 
쉐인 핏츠시몬즈(Shane Fitzsimmons) NSW 산불소방대장(RFS Commissioner)은 “예년 보다 높은 고온, 강풍, 평균보다 훨씬 적은 강우량 앞으로 몇 달 동안 이런 기후(산불 악조건)가 지속될 것 같다. 아직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았다. 아직 본격 여름도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기후 자문관(Climate Councillor)인 그렉 멀린스(Greg Mullins) 전 NSW 산불소방 및 구조대장(former Fire and Rescue Commissioner)은 “NSW의 매년 산불 시즌이 앞당겨 지고 있다. 보통 10월1일이 기준이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8월 1, 2일부터 산불이 악화됐다. 이런 증거가 기후변화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나같이 수십년 산불 진화 일을 해온 사람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렇게 심각한 수준의 산불은 전례가 없었다(unprecedented)”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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