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가 저문다. 남반부와 북반구로 나누어진 호주와 한국의 정반대의 계절에서도 12월은 상실의 계절임에는 변동이 없다.

올해는 연초에 다짐 했던 시간의 약속은 지켜 졌는지, 시간의 낭비는 없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과거는 해석에 따라 달라 진다는데 목표는 제대로 세웠는지, 그 보다도 기준은 잃지 않았는지 세모의 길목에서 돌아 보게 된다.

‘어제의 비로 오늘의 옷을 적시지 말고 내일의 비를 위해 오늘의 우산을 펴지 마라’는 어느 선인의 경구가 떠 오른다. 과거나 미래 보다 현재를 중시 하라는 교훈 이리라.

때아닌 엘리뇨 현상으로 서울의 12월초 기온이 영상 20도를 육박하고 시드니 기온이 40도에 이르는 날씨의 변덕이 지구를 강타 한다. 필자가 거처하는 서울 목동에는 파리 공원이 있다. 올 겨울에는 가을의 꽃이라는 단풍이 아름다운 색감을 상실 한 채 푸르뎅뎅한 잎사귀로 낙엽이 되어 대지에 딩굴고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의 모습과 닮아 서글프다.

파리공원은 어린이 놀이터, 청소년 운동장과 성인을 위한 각종 운동 기구, 야외 공연장, 도서실, 말끔한 화장실, 야외 식탁과 장미 공원, 바둑 장기 룸 분수대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가족 나들이에 알맞는 휴식 공간이다.

호주에서는 찾을 수 없는 가족 야외 다목적 휴게실이라 할 수 있다. 공원을 찾는 시민들 중에 유모차의 등장이 눈길을 끈다. 이들은 두 부류로 나누어 진다.

유모차에 귀여운 아기를 태우고 걷는 젊은 엄마의 표정은 맑은 하늘 처럼 밝기만 하다. 그런가 하면 유모차에 애완견을 싣고 나온 여성들은 한결같이 무표정으로 우울한 기운이 감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을 태워야 할 유모차에 개를 태우고 걷고 있으니 기쁨의 기운이 사라지는 걸까?

항상 감사 하면서 살자고 다짐 했던 연초의 결심은 이루어졌는지, 겸손하게 살자고 했던 결의는 얼마나 행해 졌는지 회개하게 된다. 감사 하면서 살면은 감사 할 일이 생긴다는 성구를 지키자고 했는데… 실은 우리가 겸손해야 할 이유는 나만 모르지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닐까?

늙어 간다는 것은 장애인이 되어 가는 과정인지 노년층의 지인을 만나면 귀, 눈, 다리, 치아 등이 부실 하다는 하소연을 듣는다. 신체는 비록 퇴화해 가지만 노인들의 지혜는 오랜 시일에 걸쳐 얻어낸 결과이다. 그래서 노인 한명이 사망 하면 도서관 한채가 불살아졌다고 아프리카 속담이 전해 온다.

호주에서도 안락사(Assisted Suicide)를 인정하게 된다는 소식이 들려 온다. 안락사는 존엄사 (Death with Dignity)와 일맥 상통한다. 우리가 늙고 쇠약해져서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되었을 때에도 삶을 가치있게 살아 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좋은 삶인 것이다.

미국의 인도계 의사인 아톨 가완디는 "사람들은 추억을 나누고 애정이 담긴 물건과 지혜를 물려 주고 관계를 회복하고 이 세상에 무엇을 남길 지 결정하고 신과 화해하고 남겨진 사람들이 괜찮으리라는 걸 확실이 해 두고 싶어한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자신의 이야기를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아는 것은 

* 사람은 죽는다

* 나 혼자 죽는다

* 아무 것도 가져 갈 수 없다.

반면에 죽음에 대해서 모른 것은

* 언제

* 어디서 

* 어떻게 죽는 것이다.

아일랜드 시인이자 극작가인 버나드 쇼는 94세의 천수를 누린 후 ‘살만큼 살다 보면 죽는 건 당연한 일’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라고 담담하게 토로 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모르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 놓여있다.

12월은 상실의 절기이다. 우리는 마지막이 언제인지 모르고 살아 간다. 우리에게 주어진 남은 삶을 서로 사랑을 실천 하면서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시련과 수난을 거쳐 종말이 온 후에 재림이 온다고 계시 했듯이 상실의 계절이 더 나은 결실의 계절을 잉태 하도록 기도한다.

겨울이 오면 봄이 머지 않듯이…(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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