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이 많이 나는 동네에 있는 산책로(Oyster Walk)
굴이 많이 나는 동네에 있는 산책로(Oyster Walk)

오늘은 수평선을 볼 수 있는 바닷가 도시, 포트 린콘(Port Lincoln)으로 떠난다. 해산물의 도시(The Seafood Capital of Australia)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각종 물고기와 해산물이 풍부한 동네다. 참치가 유난히 많아서일까, 참치를 멀리 던지는 특이한 시합을 하는 동네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운전했다. 드디어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운전하여 해안에 자리 잡은 동네(Cowell)에 도착했다. 그림엽서에 나올만한 작고 아름다운 동네다. 해안에 있는 놀이터가 눈길을 끈다. 바닥에서 물이 뿜어 나오고 머리 위에서는 물을 퍼붓는 물놀이 공원이다. 물을 흠뻑 뒤집어쓰고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듣기에 좋다. 바닷가 마을에 어울리는 놀이터다. 

수평선을 바라보며 잠시 주위를 걷는다. 해안에 있는 자그마한 야영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며칠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목적지에 야영장을 이미 예약했다. 미리 목적지를 정한 것이 후회되기도 한다. 여행하다 보면 후회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듯이. 삶을 여행에 비유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다시 자동차에 오른다. 이번에는 도로에서 나비 떼를 만났다. 나비들이 앞유리창에 계속 부딪히며 죽어간다. 어느 구간에서는 비 오듯이 떨어지는 나비 때문에 서행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동차 유리와 보닛이 지저분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나비에게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든다. 나비가 되기까지 각고의 시간을 보냈을 터인데. 

야생 타조가 거리를 노니는 국립공원
야생 타조가 거리를 노니는 국립공원

나비 떼를 벗어나 얼마나 달렸을까. 오른쪽으로는 끝없는 밀밭, 왼쪽으로는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이 펼쳐진다. 혼자 보기 아까운 경치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도로다. 천천히 운전하며 주위 풍경을 즐긴다. 동행자가 있다면 운전을 맡기고 카메라에 담고 싶은 풍경이다. 오래 기억에 남도록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본다.

도로는 또 다른 바닷가 동네로 안내한다. 동네 입구에는 큼지막한 사일로(Silo)가 있다. 밀을 보관하는 창고일 것이다. 호주에서 농산물을 취급하는 가장 큰 회사 이름(Viterra)이 쓰여있는 사일로에는 멋진 그림이 그려져 있다. 동네를 상징하는 그림일 것이다. 그런데 낙타 그림도 있다. 이외다. 호주 북부 내륙에는 야생 낙타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그러나 남부 해안에 낙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이곳에도 야생 낙타가 서식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하다.  

코핀 베이(Coffin Bay National Park)라는 국립공원에 있는 야영장에 도착했다. 포트 린콘에서 생각보다 많이 떨어져 있다. 반갑게 맞는 직원에게 이 동네는 무엇으로 유명하냐고 질문해 보았다. 대답은 굴 양식장과 물고기가 많은 동네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쿠폰 한 장을 건네준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식당에서 굴을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는 할인권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포트 린콘(Port Lincoln) 전경
전망대에서 바라본 포트 린콘(Port Lincoln) 전경

다음날에는 포트 린콘을 찾았다. 쇼핑도 하면서 이곳저곳 둘러볼 생각이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바람도 심하게 부는 날이다. 가는 길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가 보았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심한 바람이 분다. 관광객 대부분이 자동차 문을 열지 못할 정도로 심한 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이다. 몸을 건물 벽에 기대고 발아래 펼쳐진 풍경을 사진에 담는다. 풍경은 사진으로 남길 수 있으나 바람을 사진에 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내에 들어섰다. 바닷가에 줄지어 있는 상점을 기웃거리기도 하면서 낯선 동네를 걷는다. 관광객이 많은 도시임을 직감할 수 있는 거리 모습이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식당을 겸하고 있는 생선 도매점을 찾았다. 메뉴를 보니 회도 있다. 그러나 옆 테이블에서 주문한 회를 보니 전문으로 하는 주방장 솜씨가 아니다. 메뉴를 살펴보아도 마음에 드는 음식이 없다. 호주 사람들이 흔히 먹는 생선튀김으로 점심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생선회를 곁들인 얼큰한 매운탕 맛을 모르는 호주 사람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밀밭이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 동네, 싸일로에 동네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밀밭이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 동네, 싸일로에 동네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국립공원에 있는 야영장 주변 환경이 마음에 든다. 특히 해안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Oyster Walk)는 매력적이다. 매일 아침 산책로를 걷는다. 걷다 보면 다양한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식물과 새들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다. 그중에 눈길을 끄는 안내판이 보인다. 조개에 대한 안내문이다. 조개가 많이 서식하는데 200개까지만 잡을 수 있다는 경고가 쓰여있다. 얼마나 많기에 200개까지 잡도록 허용하는 것일까.

해변에 내려가 본다. 작은 조개가 백사장에 가득하다. 혹시 죽은 것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어 깨뜨려 보았다. 살아있는 조개들이다. 그러나 살을 발라 먹기에는 너무 작다. 물이 빠졌을 때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큰 조개가 있을 것이다.

한 시간 걸었다. 그러나 산책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 시간을 걸어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고의 장소다. 문득 산책을 즐겼던 칸트라는 철학자가 떠오른다. 사람들이 칸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고 할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한 철학자다. 그의 깊은 사상은 산책을 통해 나왔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해산물의 도시답게 어선이 줄지어 정박한 항구
해산물의 도시답게 어선이 줄지어 정박한 항구

동네에는 야생 타조들이 많다. 야영장에도 사람을 무시하며 캐러밴 주위를 배회하는 타조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도로 한복판에서 서성거리며 차량을 세우는 일도 허다하다. 주위가 어두워지면 야영장은 타조를 대신해 캥거루 놀이터로 변한다. 사람이 찾아왔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캐러밴 주위를 서성거리는 캥거루들이다. 자연 속에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오늘은 국립공원 깊숙이 자동차로 들어가 보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차에서 내려 벼랑 끝에 가 본다. 하늘은 비가 내릴 것 같은 검은 구름으로 서서히 뒤덮이고 있다. 깎아지른 낭떠러지 아래에서 출렁이는 바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자연의 웅장함을 돋보이게 한다. 

자연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위한 캠프장에도 가 보았다. 공동화장실만 덩그러니 있는 열악한 환경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인간의 나약함을 온몸으로 체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가끔은 지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밤하늘의 별들은 유난히 반짝일 것이다. 고생한 만큼 기억에 남을 추억도 많이 가지고 갈 것이다. 

삶을 되돌아보아도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평범하지 않았던, 고생했던 일이 기억에 많이 남지 않던가. 여행과 삶은 비슷한 점이 많다.

황량한 국립공원 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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