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로는 대개 세월은 유수, 영어로는 Time flies. 흐르는 물보다  쏜 살이 훨씬 더 빠르게 지나가지 않겠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인사도 무렴하게 일월달도 벌써 중순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문장가들에게는 아직도 계절의 정서가 좋은 글 소재가 될 것 같다. 

나는 좀 다르다. 한국인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다. 대부분이 과거 살아야 했던 잘못되고 어려웠던 삶과 사회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계절과 세월의  변화는  어쩔 수 없는 개미가 도는 쳇바퀴, 그보다 이 잘 못된 사회를 조금이라도 고쳐 후진에게 남겨주려는 장정 (長征)을 계울리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대학 교수들의 역할

그러나  이번 글의 제목은 계절과 조금은 관계가 있다.  매년 해를 넘기면서 교수 사회가 뽑는 사자성어 (四字成語)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은 지난 1년과 함께 자신을 돌아보는 습관이 있어 그런 연례 행사가 된 거 아닐까.

작년의 사자성어(四字成語)는 견리망의(見利忘義)였다. 국어사전을 보니 이 한자의 뜻은 “이익을 보면 의리를 잊는다”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문구를  추천한 김병기 전북대 교수는 “우리나라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며 국가 백년지대계를 생각하는 의로움보다는 목전에 있는 이익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고 한다.

모두 백번 옳은 말이다. 그 말 자체에 토를 달 건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덕담이나 지당한 가르침을 몰라 실천 못하거나 안 하는 게 몇 가지나 있나를 묻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 교수가 받는 위상은 내가 보기에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보다 푸짐하다. 보수 면에서도 거의 그렇다. 그런 대단한 대접을 받아야 하는 까닭은 그들은 다른 분야 전문가들이 못하는 깊은 연구와 지식과 양심으로 사회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잠재력 때문이다. 특히 경제는 잘되고 있다지만 이 나라가 헤매고 있는 혼탁한 안개 속을 잘 빠져나올 수 있게  길을 밝히는 사명이 그들에게 주어져 있어 그렇다고 나는 본다.  그런 지식 공동체가 국민을 향하여 1년에 한번  언론을 보고 발표하는 게  그거라면 서당의 훈장들보다 나은 게 무엇인가.

 

학문의 유회

물론 그들은 교수 공동체 전체의 연출은 아니라고 말 할 것이다. 요즘  교수들은 그 자리를 지키자면  학술지에 연구 논문을 자주 써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점에서 호주의 큰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한번 실린 적이 있다. 많은 인문학자들이 비싼 연구 자금을 받아 현실문제 해결과는 동떨어진 연구를 한다며 구체적 사례를 든 적이 있다. 말하자면 학문을 가지고 하는 일종의 유회(遊戱)다. 우리는 다를까.


문제의 지적과 해결은 달라

보통 인문사회과학이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나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구별해서 본다. 대부분 한국의 인문학자의 주축을 이루는 문학가, 역사가, 철학가(文史哲)와 인접 분야 학자들은 언제나 사회문제를 훌륭하게 지적하고 묘사한다. 그러나 자연과학과 달라 복잡한 인간관계로 된 사회문제는 밖에 나타난 현상의 지적만으로는 해결로 이어지지 못한다.  더욱 이들의  지적이  당위(當爲,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일)에 그치는 유라면 말할 것 없다. 사자성어 자체가 그렇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안 하는 데는 그만한 과학적 이유가 꼭 있다. 영혼의 문제, 사유, 가치관을 빼놓고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과학적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말한다면 There are the reasons why they behave the way they behave.  지적을 넘어 그 이유 (실제적으로는 많은 변수)를 과학적 방법론을 가지고 밝혀 해결을 돕는 건 사회과학자들의 몫이다.
 

잘 못된 사회풍토

그렇게 해도 해결이 될까 말까인데 그런 게 없고 당장 집권이나 정권 연장이 1차 관심인 말 잘하는 정치인들의  발언과 논쟁과 이합집산 (離合集散)만으로는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없다.  난국의 깊은 저변은 너무 오래 단단히 굳어진 잘못된 사회풍토다 

두어 가지만 말한다면 돈과 자리면 어떤  하수인 노릇도 마다하지 않는 지독한 출세지향주의와 나라를 더럽혀 놓고도 조금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출판 기념회나 여는 사회원로와 지도급 인사들의 두둑한 배짱과 그들에게 아첨하러 모여드는 국민이 만드는 풍토다.

이건 집권이나 집권 연장이 1차 관심인 현역 정치인들이 부르짖는 법과 제도의 혁신 그 자체로 바뀌지 않는다. 그럴 것 같으면 벌써 바뀌었다. 시간을 두고 그 원인을 밝히고 국민을 계몽하는 운동과 그에 앞서 길을 밝히는 작업이 필요한데 그 큰 캠퍼스와 막강한 인원을 자랑하는 대학은 뭘하는 건가.

고국과 해외의 동포들이여! 지금의 사회풍토로는 다가오는 총선 결과 어느 집단이 정권을 잡아도 달라질 건 없다. 새해에는 정치인들의 싸움을 바라보며  훈수나 둘 계 아니라 우리의 사회풍토는 왜 이렇게 되는가를 알아보려는 국민이 많아지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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